호주의 동부에 살고 있으면 서부에 가는 일이 쉽지가 않다. 비행기로 5시간 걸리고, 시차도 3시간이나 된다. 가까운 외국보다 더 비싼 비행기로 엄두를 낼 수 없는 여행이었다. 셋째 딸이 퍼스에 있는 이유로 비행기 값이 저렴할 때 우리 온가족 8명은 퍼스에 갈 계획을 세웠다. 한 해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 지 12월이되어 퍼스에 드디어 오게 되었고 가족들과 함께 퍼스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게 되었다. 동쪽에서 볼 수 없는 조용하고 새하얀 예쁜 비치들이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오자마자 바다로 향했는데 처음 도착한 곳은 시티 비치였다. 날씨가 조금은 선선해서 그런 지,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할 곳이 넉넉하고 비치에는 거의 사람들이 없었는 데 파란 색을 칠한 등대와 새하얀 모래가 한 눈에 쏙 들어왔다. 시티 비치에 가는 길에는 높은 산이 없고 나즈막한 언덕들만 있는데 그 언덕들에 놓여진 저택들이 평화롭게 보이기도 했다.
교회에서 부부 세미나를 예정하고 있었기에 도착한 몇 일은 가벼운 일정만 잡았고 주말에는 퍼스에서 가정세미나를 감사하게도 성공적으로 잘 마칠 수 있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퍼스의 빠질 수 없는 관광 명소인 라트네스트 아일랜드 (Rottnest Island)에 가게 되었다. 라트네스트 아일랜드는 퍼스에서 30분 정도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는데 가면 아주 귀여운 콰콰 (quokka)라는 동물로 만날 수 있는 곳인데 그 곳은 섬이 커서 걸어서는 다닐 수가 없고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섬의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이 많이 있어서 그냥 자전거를 타면 힘들다고 하셨던 한인 교회 사모님의 말이 떠올라 고민이 많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서투르니 전동 스쿠터를 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 가족들이 스쿠터는 않을 자리가 없으니 몇 시간을 서서 스쿠터를 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무도 바꾸어 타지 않을 거라는 말에 귀가 얇은 나는 그만 전동자전거를 선택해 버렸다.
용기를 내어서 자전거를 선택했지만 다행이 전기 자전거를 빌려서 오르막길을 가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고 아이들만 잘 쫓아가면 별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나는 모터로 움직이는 무거운 자전거에 익숙해지는 것이 젋은 아이들 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속도가 조절이 되지 않다 보니 나도 모르게 먼저 앞에 가는 일이 생겼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그만 속도를 줄이려다 자전거는 모래 위헤 쳐박혔고 손과 무릎에는 피와 멍이 드는 일이 일어났다. 버스를 타려던 계획이 없었던 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고 치마에 피가 묻어 얼룩얼룩해지자 대안으로 남편의 수영복 바지를 가방에서 꺼내어 입고는 다시 섬을 자전거로 달리게 되었다.
한 번 넘어지고 나니 조금은 자전거의 핸들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었고 한 손에는 반창고를 붙이고 한 손에는 손수건으로 손을 감싼 채 섬 여행을 다시 시작했는데 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푸른 바다를 보며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지나가는 것이 긴장이 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 앞에 가고 있던 아들이 돌아왔다. 우리집에 유일한 아들은 자전거 양쪽으로 온 가족의 짐을 싣고 있었는데 그만 자전거를 타다가 바지에서 핸드폰이 흘러내려서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이폰은 위치추적기가 있어서 어디 쯤 있는 지를 확인하게 되었고 연락을 여러번 시도하면서 전화기를 찾기 위해 온 가족이 열심히 노력을 기울였다. 아들이 전화기를 찾기 위해 이전 장소에 다녀오는 동안 몇 명은 한참이나 그늘이 없는 땡볕에서 자전거를 주차한 채 아들의 전화기를 찾기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이리시 악센트를 가진 중년의 남성이 아들의 전화기를 주워서 찾아 주려고 시도를 하고 있었고 결국 전화기를 찾게 되었다.
전화기를 찾아준 분께 감사를 표하며 먼저 간 팀을 따라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출발을 하는데 먼저 간 아빠와 두 딸에서 들려온 소식이 있었다. 막내가 타던 자전거의 바뀌가 터졌다는 것이다. 뒤에 쫓아간 4명의 식구들은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서 또 한참이나 기다리고 있는 식구를 만나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간단하게 싸온 음식들을 다 꺼내어서 먹고는 자전거 수리를 기다리는 두 사람만 남기고 다시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었다. 라트네스트 섬에는 정말 예쁜 해변들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 수심이 얕으면서도 바위들이 있어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부분이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간 중간에 이런 매력적인 비치들이 새롭게 나타나곤 했다.
한참이나 함께 자전거를 타다가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하고 있는데 핑크 레이크 (pink lake) 라고 하는 곳으로 가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그 곳이 아주 유명한 곳이라는 말을 하는 딸의 말을 들으며 언젠가 잡지에서 보았던 호주의 명소의 한 곳으로 소개되었던 핑크 호수가 생각이 났다. 좁은 길을 따라 자전거로 운전을 해서 간 곳은 신기하게도 호수가 핑크색이었다. 하얀색 모래와 붉은색의 풀이 얕은 물과 함께 햇빛을 비추면서 반짝이는 핑크색 호수를 만들고 있었다. 바로 오른쪽에는 파란색 호주가 있는데 반대쪽은 핑크색 호수라니..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신비가 놀라웠다. 그 호수를 구경하고 나왔더니 아이들 넷째와 다섯째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마도 표지판에서 그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았다. 가족들은 조금 당황을 했지만 본래 가기로 했던 방향으로 다시 출발을 했고 그 길의 중간에서 잃어버린 두 딸을 찾을 수 있었다.
함께 다시 돌아오는 길에 또 한번의 희안한 광경을 보았는데 바다가 바람에 밀려 오면서 바다 거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염 물질이 그쪽으로 몰려와서 생긴 세제 거품 같은 하얀색 거품이었는데 그것이 해변 가득 있었고 그 거품이 바람에 육지로 올라와서 눈처럼 공중에 날아다니기도 했다. 일상적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의 한 모습이 독특하게 남아있는 라트니스 섬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 곳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는 쿼카들이 있었는데 사진에서 보던 예쁘고 귀여운 쿼카가 아니라 캥거루 같기도 하고 들 쥐 같기도 한 쿼카가 여기 저기 천천히 다니고 있는데 털은 부드럽게 보이지도 않았고 중간 중간 구멍이 뚫려있고 지저분했고 얼굴은 뽀쪽한 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렇게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모습은 아니었다. 관광명소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사랑스럽게 만들어 놓은 사진은 어쩌면 사람들이 조작한 모습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쿼카를 아래에서 위로 보면 귀여운 다른 모습인 것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이지만 온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연속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하루가 많은 인생의 축소판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예기치 않았던 자전거 사고와 핸드폰 분실, 그리고 자전거 바퀴가 터진 사건 그리고 아이들의 분실과 썬 번 등… 여러가지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섬 한바퀴를 잘 돌았고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며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인생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우리는 수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결국 가족의 사랑의 힘으로 그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고 그 어려움을 이겨낸 후에 우리는 성장하고 이루어낸 것들로 인해 기뻐하며 인생을 잘 마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이 없다고 하는 어른들의 말처럼 많은 자녀들을 데리고 하루 여행을 하는 중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 모든 것은 추억이 되었고 그 모든 것은 우리 가족에게 의미가 있는 경험이 되었다.
인생에서 만날 어려움을 미리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어려움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또 나에게 있는 가족의 사랑이 있다면 오늘 하루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특별기고자 :
서미진 :
호주기독교대학 부총장 (Vice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호주한인생명의전화 원장 (Director of Australia Korean Life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