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가정 폭력

[특별기고] 가정 폭력 80년대 ‘서정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나도 고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아름답고 청순하였으며 유명 개그맨인 서세원과 결혼해서 현모 양처로 살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증명하듯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종종 여성 잡지에 등장해서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32년동안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이혼을 하면서 밝혀진 완전히 다른 진실은 그녀는 성폭력을 당해서 임신한 채로 남편과 결혼했으며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남편 서세원이 사망한 후에 서정희씨는 최근 ‘금쪽 상담소’에 출연을 하여서 자신의 어려움을 상담하게 되었는데 필자는 서정희씨가 말하는 내용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랫동안 가정 폭력에 시달린 피해자들이 보여주는 특성을 고스란히 말에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결혼한 후 서정희는 남편의 말만 듣고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지인들과 의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남편은 사회적 관계를 차단했고 원 가족들 과의 관계도 소원해졌으며 오직 남편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가정 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것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하고 철저하게 외부의 영향력을 차단함으로 피해자가 자신만을 의지하게 하며 다른 곳에 도움을 얻지 못하도록 고립시키는 행동을 한다. 친구를 만난다고 하면 누구를 만나는 지 자세히 캐묻고, 서정희가 나가서 누구를 만나도 자주 연락을 해서 만난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어 자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고 그 사람에 대한 비난을 하거나 외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외로움을 호소한다든가 협박을 한다든가 가정일에서 다른 요구들을 많이 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차단시키게 한다. 두 번째는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은 폭력적인 관계에서 상대에게 거짓말을 진리로 믿게 하는 정서적 폭력으로 상대방을 철저하게 속이고 조정하고 통제하는 방식이다. 서정희는 자신이 남편보다 잘 난 것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에게 한 일들은 자신을 사랑해서 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남편이 폭력을 행사한 것도 철저하게 사회생활을 차단한 것도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며 자신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혼을 하고 나서 다시 돌아가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이 이혼 후 건강이 나빠진 것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도 얼핏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통해서 철저하게 서정희는 남편의 모든 나쁜 행동들조차 사랑 때문이라고 믿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스라이팅을 철저하게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무기력함이다.  서정희는 이혼 후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대부분 오래동안 가정 폭력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독립성과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래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했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의존되어져 있고 가해자 없이 자신이 무엇인가를 독립적으로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된다. 조금 잘못할 때마다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고 그 잘못이나 실수를 커버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뿐이라고 철저히 느끼게 하는 경험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랫동안의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살아왔기에 그것을 고발하고 이혼 소송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사실 이혼을 안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가정 폭력으로 인해서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학습된 무기력이 그녀의 삶을 붙잡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생각 외로 가정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시달린 사람의 경우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이제는 자신이 나이가 많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서면 다시 무기력감을 느끼며 아무것도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해야 이런 가정 폭력의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구해낼 수 있을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정 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모든 구체적인 사생활을 다 점검하고 감시하는 사람일 수 있기에 그 두려움의 크기로 인해서 감히 그 생활에서 나올 엄두를 못 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 부분을 알기에 가정 폭력을 신고하는 기관들 에서는 웹사이트에 접속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기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오랫동안 사회적인 관계가 차단을 당했기 때문에 막상 도움을 줄 대상들이 주위에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가정 폭력의 문제는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며 사람의 가장 소중한 핵심 가치인 자아 존중감을 망가뜨리게 하며 독립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서지 못하게 하며 모든 관계를 깨뜨리게 하는 주범이기에 반드시 다루어야 하고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것을 세상에 알리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 폭력의 피해자는 폭력이 있을 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며 관련 복지 기관을 통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공식적인 기관에 도움을 구하는 것과 동시에 가까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의 원리가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더 큰 힘 앞에서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기에 주위의 사람들이 알도록 알리는 것이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잃어버린 자기 가치감을 되찾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호주 정부에서 시행하는 가정 폭력 복지 서비스가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최근에는 가정 폭력을 다루는데 있어 예방이 치료보다 중요하고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정폭력의 문제로 연락을 한 사람에게 독립성을 갖게 하며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가정폭력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게 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도 보게 된다. 세 번째로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은 언제 위기 상황이 생길 지 모르기에 위기 정도를 평가하고 위기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놓는 것도 중요하다. 혹시나 있을 위험한 상황을 위해 대비를 하는 것은 피해자와 자녀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일이다.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폭력사건이 생긴다면 도망을 가도 있을 곳이 없게 될 때 난감한 상황이 된다. 게다가 어린 아이까지 있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기에 상황을 미리 대비해서 안전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 번째로 가해자도 어쩌면 예전에는 폭력의 희생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는 분노 조절 훈련을 받거나 개인상담 또는 집단 상담을 통해서 가정 폭력이 얼마나 큰 피해와 아픔을 주는 지를 훈련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 가정 폭력의 문제로 지속적인 상담을 해야 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 시간이 본인에게는 귀찮은 시간이 될 수 있지만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고 똑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가족을 신고해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하냐고 말하고 가족은 어떤 행동이든 서로 덮어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가족이기에 더 변화가 어렵고 가족이기에 더 건강한 관계를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해서 반복되거나 심각한 가정폭력은 꼭 신고를 해야 하며 가해자의 분노 조절 훈련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경제적인 손실이 그리고 관계의 서먹함이 경험되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가 치료를 받을 때 변화는 더 빨리 경험되어질 수 있다. 가정 폭력은 누구나 에게 경험되어질 수 있는 부분인데 오래동안 가정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자기됨을 잃어버리고 독립된 힘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 폭력의 문제는 꼭 다루어져야 한다. 가정폭력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눈을 감는 사람이 아니라 가정폭력의 근절에 앞장서는 모두가 되어서 좀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하자. 특별기고자: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총장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특별기고] 핵심 신념 (Core belief) 찾기

[특별기고] 핵심 신념 (Core belief) 찾기 한 여성분이 말하길 자신의 오빠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오래 전에 자신에게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여성분은 가족에게 들었던 자신에 대한 평가로 인해 자신은 문제가 있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 분에게 오빠가 그래서 그 이후에 대화를 전혀 하지 않는 지 아니면 그 때가 서로 갈등이 있었던 특수한 상황이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때가 특수한 상황이었고 그 말이 한 번 들었던 경험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바른 말,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데 세상은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상처입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이 내뱉는 말들이 거칠고 상처가 되는 말인 경우에 사람들은 그 말에 영향을 많이 받고 그들의 말을 진리처럼 믿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학대를 주는 부모인 경우에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원망을 돌리기 보다 자신에게 원망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위의 여성은 자신과 이야기하기 싫다는 오빠의 말을 일회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말을 영구적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에게 그 화살을 돌리며 자신을 문제가 있는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의 결과는 ‘낮은 자존감’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 보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 결국 나의 가치가 하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여성이 오빠와의 관계뿐 아니라 주위의 친한 사람들과 몇 번의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 또 더 나아가서 주위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상처는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데 상처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상처만 받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잘못된 거짓말을 믿게 된다.  그 거짓말을 많이 믿는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 뿐 더러 주위의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성격적인 결함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나는 상처로부터 내 자신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는 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상처로 인해서 나를 너무 무가치하고 못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은 지 또는 반대로 상처로 인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있진 않은 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장 흔한 거짓말들 중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야 ‘, ‘나는 충분치 않아’, ‘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와 같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생각들이다.  물론, 이런 거짓말을 믿게 된 것은 그냥 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반복해서 가치 절하 평가의 말을 권위자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심한 신체적인 학대나 방임으로 인해서 그런 생각을 믿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몸으로 정서적으로 경험한 나쁜 경험이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것을 경험한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야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모두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이고 누구나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 인간이 무엇을 해서가 아니고 있는 모습 그대로 “참 좋았더라“라고 하셨다. 인간을 행위로 평가한다면 불의의 사고로 온 몸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장애인은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능력으로만 인간을 평가한다면 인간은 순서를 매겨서 누가 더 중요하고 누가 덜 중요하다라고 평가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비 인간적이라고 여긴다. 그것은 사람의 가치가 능력이나 행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처들과 불우한 배경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그리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 할 지라도 내가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은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가슴 깊이 뿌리 박힌 내 자신에 대한 거짓말은 생각보다 바꾸는 것이 쉽진 않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치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만 일시적으로 바꾼다고 할 때 또 다른 상처가 다가올 때 옛날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거짓말을 다시 깨우기 때문이다.  인지 행동 치료에서는 그렇게 가슴 깊이 뿌리 박힌 생각을 ‘핵심 신념 (Core belief)’ 이라고 부른다. 가장 원뿌리 되는 핵심적인 생각이 크고 작은 일상의 상처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내적 신념들을 만들게 하는 데 부정적인 신념들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슴 깊이 뿌리 박힌 내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생각은 바꾸는 것이 쉽지 않지만 꼭 바꾸어야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가슴 깊이 뿌리 박힌 내 자신의 핵심 신념을 어떻게 찾아서 바꿀 수 있을까?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일상 생활에서 기분 나쁜 일을 경험할 때 지금 내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서 그 생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라고 생각을 해 보면서 생각의 뿌리는 한 단계씩 찾아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의 핵심 신념을 찾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의 예에서 나온 여성분은 오빠와의 관계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자신의 머리 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먼저 기록을 다 해보고 그 생각이 어떤 믿음에서 왔는 지를 찾아 보고 그 믿음이 사실인 지 그리고 그 생각에 반대되는 증거는 없는 지를 점검을 해 보고 그리고 나서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자동적 사고 그 밑에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믿고 있는 지를 찾아보다 보면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을 찾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서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믿고 있는 거짓말이 어떤 것들이 있는 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발견한 잘못된 핵심 신념이 있다면 건강한 반대 신념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건강한 사고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나의 부정적 핵심 신념을 새로운 신념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므로, 상처는 부정적 감정을 갖게 할 뿐 아니라 왜곡된 사고를 갖게 만들어서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에 살아가면서 경험한 상처가 있다면 반드시 상처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왜곡된 사고를 건강한 사고로 바꾸어서 내 자신을 사랑할 뿐 아니라 타인과도 건강한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특별기고] 고통을 다루는 법

[특별기고] 고통을 다루는 법 ‘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면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위의 글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이 쓴 책에 나오는 말이다.  삶이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가 인정할 수 있는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고통을 없는 삶을 살아가려고 부단히 애를 쓰곤 한다.  한국 전쟁과 가난의 고통을 겪었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가난과 배고픔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눈, 코 뜰 새 없이 일을 하면서 살았고 그 덕택에 한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좋아지게 되었다. 이것 만을 보면 노력하고 애쓰면 고통이 사라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난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놀라운 성장을 한국은 경험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인간의 고통을 다 가져다주진 못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모양의 고통이 존재한다. 경쟁으로 인한 고통, 상대적인 빈곤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상실로 인한 고통, 이러한 고통은 예전이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고통이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경제적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공부시키느라 허드렛일을 하시면서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하셔야 했다. 그래서 그러신지 자녀들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고 살 길 바라셨다. 그래서 필자가 결혼한 후 여전히 고생을 하면서 사는 것을 보고는 힘들어하셨다.  그것은 딸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게 사는 것을 보고 고생을 한다고 생각 하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살아가는 여자의 삶이 마치 고생이 없는 성공한 삶인 것처럼 말씀을 하셨는데 나중에 철이 들고 나이가 먹어서 알게된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손에 물을 묻히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삶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말을 지속해서 들었던 내가 엄마의 말을 진리로 믿고 손에 물을 묻히고 살며 적당한 삶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나의 삶을 비참하게 생각했다면 나는 정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상담을 공부하지 않고 신앙을 통해서 어떤 것이 인간으로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인 지를 바로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엄마의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면서 어떡해든 내 삶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소위 ‘부자’로 살아가는 것을 삶의 최고의 목표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 부요해졌을지는 모르나 끊임없는 목마름과 허덕임 속에 여전히  또다른 고통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나는 고통이 없는 삶이 좋은 삶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삶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고통을 없애고 피하는 삶이 아니라 내 삶에 있는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 믿고 살아간다. 고통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면 더 이상 삶은 고통스럽지 않다 라고 말한 스캇 펙의 말처럼 이미 일어난 일이나 삶에서 없애 버릴 수 없는 삶의 부분은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미래를 향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그럴 때 삶이 살아갈 만한 것이 될 수 있다. 한 여성 분이 젊은 나이게 집에 돌아오던 길에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 경험은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고 그 이후로는 모든 남자들에 대해서 신뢰를 할 수 없었을 뿐아니라 자신도 늘 더럽혀졌다는 생각에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 여성 분은 그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늘 그런 사건을 경험한 자신으로 인해 피해의식을 느끼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고립적으로 살고 있었다.  그 분은 과거의 상처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서 오늘을 살지 못했고 그것은 그녀의 현재는 미래로 이어져 수 십년의 삶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이 여성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의 사건을 잘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그 고통은 계속해서 해결되지 않은 지속적인 고통을 가져다주어서 계속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 외로 상담 현장에는 이런 분들이 많다. 과거에 일어난 일로 인해서 오늘과 미래를 살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통을 주었던 과거라 할 지라도 우리는 과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그 과거는 성장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나를 수용하며고 비록 힘든 여정을 거쳤지만 오늘날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아갈 때 과거의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성장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 중 회복이 잘 되지 않고 성장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용서를 잘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용서를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 지를 먼저 토해내고 표현하는 과정들을 꼭 거쳐서 죽을 만큼의 고통과 어려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 경험한 아픔과 고통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꼭 용서의 과정을 거칠 때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하면 그 사람과 다시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용서는 내가 그 사람의 심판자가 되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의 마음을 내려 놓겠다는 의미다. 더 이상 그 사람의 삶에 간섭해서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신께 복수를 맡기는 의미이다. 그리고, 고통에서 자꾸 벗어나려고 하기 보다 현재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은 그 고통을 잘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고통을 다루는 법이다.  수용 전념 치료에서는 고통을 없애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고통을 없애려고 할 때 그 고통이 더 크게 경험되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괴로운 생각을  안하고 싶은데 불안하거나 강박증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괴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예로 잠을 자야지 라고 하면 잠이 더 안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이런 고통이 있구나 라고 그 고통을 인정하고 ‘그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신의 삶의 가치를 향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할 때 고통스러운 삶에서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우리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상담 기법 중에 EFT라고 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 기법은 많은 정서적 고통을 다루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거기에서 자주 쓰는 문구가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묘사된다. “비록 내 삶에  어려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도 나는 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용납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이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우리의 삶에 고통이 있지만 우리는 그 고통을 통해서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고 그 고통과 함께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고통은 회피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총장  (President…

[특별기고] 내 마음 가꾸기 

[특별기고] 내 마음 가꾸기  어떤 한 분이 이야기를 한다. “제가 평소에는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데 무엇인가 기한이 있는 일들을 할 때는 스트레스가 있어서 인지 짜증이나 화를 내게 돼요” 그리고 또 다른 분은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하는 말을 듣고 조금만 화를 내도 되는데 이전에 받았던 상처가 있으니까 작은 일에도 갑자기 아주 흥분하게 돼요.” 우리의 마음은 참 신기하다. 똑 같은 사건이지만 어떤 때에는 화가 전혀 나지 않는데 어떤 때에는 화가 많이 나고 똑같은 부탁이지만 누가 부탁을 하느냐에 따라서 잘 들어주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아주 오랜 것들도 생생하게 기억하기도 하고 바로 경험한 일인데 지우개처럼 금방 잊어버리게도 한다. 이렇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대인 관계와 그 사람의 삶의 행동에 큰 영향을 주곤 한다. 쉽게는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얼굴 표정부터 달라진다. 그에 비해서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눈동자가 불안하거나 어깨가 위축되어 있거나 다리를 떨거나 손을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때 예민하게 대하지 않으며 타인을 편안하게 수용하고 또 타인을 돕거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게 된다. 가끔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 중에서 외모가 출중하게 예쁘고 키고 크고 괜찮은데 마음의 상처로 인해서 표정이 삐뚤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말투나 모습에서 자신감과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고 소극적이며 불안감이 확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외모가 아름다워도 내면에 이슈가 있어서 그 아름다운 외모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면의 상처입은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 생각이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얼른 마음이 회복되어 겉모습도 (여기에서 말하는 겉모습은 표정이나 말하는 어투 혹은 포즈 같은 것을 말함) 아름다워 지기를 기도하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지금 아이의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아도 자신감이 있고 안정된 아이는 무엇이든 시도하면 잘 할 것 같고 어려움도 이겨내서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식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아이의 내면 즉 마음이 단단하다 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마음이 불안한 아이가 있다.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해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염려를 하게 되는 아이다. 그 이유는 아이의 마음이 여려서 작은 일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지는 일들이 종종 경험되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겉모양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다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과 환경적으로 경험한 일들과 다 함께 작용하면서 사람의 마음의 모양은 형성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마음은 어떤 사람의 표현처럼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좁고 작아서 타인을 잘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마음은 ‘내 마음은 호수’라는 표현처럼 잔잔하고 평화롭고 요동이 없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평생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노력이 평생 필요한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을 때로는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처럼 큰 마음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을 돌보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부부 갈등이 조금 있을 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그것을 돌보지 않다가 나중에 관계가 정말 힘들어지고 어려워져서 이혼까지 고려하게 될 때 마음을 들여다보고 상담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아이가 힘들다고 엄마, 아빠에게 신호를 보냈을 때는 아이의 욕구와 바램을 계속 무시하다가 아이에게 심각한 정신 질환의 문제가 왔을 때 그제서야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잘 가꾸는 것은 모든 삶의 부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세안을 하고 에센스 마스크를 얼굴에 붙이고 맛사지를 하는 시간만큼 정도라도 마음을 돌보는 것에 시간을 쓰는 사람은 훨씬 더 풍성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돌 봐주어야 할까?  사람들은 건강하고 예쁜 피부를 위해서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을 사용해 보고, 또 피부 관리도 다양한 방법으로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과감하게 안면 거상술까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장품으로 젊었을 때부터 얼굴을 잘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우리 마음도 한 가지로만 돌 봐줄 필요는 없다. 나에게 맞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할 수 있는 것은 ‘저널쓰기’다.  저널을 쓰며 자신의 삶을 반성해 보는 것은 마음의 평안과 성장을 위해서 큰 유익이 된다. 글 쓰는 것이 어려운 사람은 꼭 글로 저널을 쓸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시로, 때로는 그림으로 저널을 채울 수도 있고, 때로는 감사 저널, 또는 감정 저널을 기간을 정해 놓고 쓸 수도 있다.  또는 일터에서 일어난 일들의 스트레스를 정리하기 위해 반성적 저널을 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널 쓰기를 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와 감정과 생각이 정리가 되고 객관화되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또 한가지 방법은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10분 정도라도 가질 수 있다.  눈을 감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도 괜찮고 잠깐 창문을 열어서 바깥의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내 마음에 지금 어떤 생각이 있는 지,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있는 지를 살펴 보고, “내 안에 이런 생각이 있었구나….내 안에는 이런 감정이 있었구나….” 라고 하면서 시냇물에 나뭇잎이 둥둥 떠내려 가는 것처럼 내 생각과 감정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오늘  그 일을 겪고 나서 자꾸만 그 일만 생각하고 있구나” 와 같은 것도 깨닫게 되고 사로잡힌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서 내가 그 생각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힘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에게 말해 줄 수 있다. “평안 ~  평안 ~ “ 필자의 경우 매일 아침 성경 구절을 보면서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고 내 삶에 적용을 하면서 짧게 기도를 할 때 마음의 평안과 힘을 얻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큰 차이를 갖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어떤 분은 자신이 마음이 정리가 안되어 힘들 때 기도를 깊이 하면 그 때 바른 생각이 떠오르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것이든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그 마음이 상처로 얼룩진 곳이 아니라 누구든 쉬어 갈수 있을 정도의 평안과 정리된 힘이 있는 곳이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건강하고 열매 맺는 삶을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게 된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사람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처럼 마음의 샘에 물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해서 마음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성실하게 함으로 마음이 주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특별기고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총장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특별기고] 내 마음 가꾸기 

[특별기고] 내 마음 가꾸기  어떤 한 분이 이야기를 한다. “제가 평소에는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데 무엇인가 기한이 있는 일들을 할 때는 스트레스가 있어서 인지 짜증이나 화를 내게 돼요” 그리고 또 다른 분은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하는 말을 듣고 조금만 화를 내도 되는데 이전에 받았던 상처가 있으니까 작은 일에도 갑자기 아주 흥분하게 돼요.” 우리의 마음은 참 신기하다. 똑 같은 사건이지만 어떤 때에는 화가 전혀 나지 않는데 어떤 때에는 화가 많이 나고 똑같은 부탁이지만 누가 부탁을 하느냐에 따라서 잘 들어주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아주 오랜 것들도 생생하게 기억하기도 하고 바로 경험한 일인데 지우개처럼 금방 잊어버리게도 한다. 이렇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대인 관계와 그 사람의 삶의 행동에 큰 영향을 주곤 한다. 쉽게는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얼굴 표정부터 달라진다. 그에 비해서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눈동자가 불안하거나 어깨가 위축되어 있거나 다리를 떨거나 손을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때 예민하게 대하지 않으며 타인을 편안하게 수용하고 또 타인을 돕거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게 된다. 가끔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 중에서 외모가 출중하게 예쁘고 키고 크고 괜찮은데 마음의 상처로 인해서 표정이 삐뚤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말투나 모습에서 자신감과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고 소극적이며 불안감이 확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외모가 아름다워도 내면에 이슈가 있어서 그 아름다운 외모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면의 상처입은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 생각이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얼른 마음이 회복되어 겉모습도 (여기에서 말하는 겉모습은 표정이나 말하는 어투 혹은 포즈 같은 것을 말함) 아름다워 지기를 기도하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지금 아이의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아도 자신감이 있고 안정된 아이는 무엇이든 시도하면 잘 할 것 같고 어려움도 이겨내서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식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아이의 내면 즉 마음이 단단하다 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마음이 불안한 아이가 있다.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해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염려를 하게 되는 아이다. 그 이유는 아이의 마음이 여려서 작은 일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지는 일들이 종종 경험되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겉모양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다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과 환경적으로 경험한 일들과 다 함께 작용하면서 사람의 마음의 모양은 형성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마음은 어떤 사람의 표현처럼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좁고 작아서 타인을 잘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마음은 ‘내 마음은 호수’라는 표현처럼 잔잔하고 평화롭고 요동이 없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평생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노력이 평생 필요한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을 때로는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처럼 큰 마음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을 돌보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부부 갈등이 조금 있을 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그것을 돌보지 않다가 나중에 관계가 정말 힘들어지고 어려워져서 이혼까지 고려하게 될 때 마음을 들여다보고 상담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아이가 힘들다고 엄마, 아빠에게 신호를 보냈을 때는 아이의 욕구와 바램을 계속 무시하다가 아이에게 심각한 정신 질환의 문제가 왔을 때 그제서야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잘 가꾸는 것은 모든 삶의 부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세안을 하고 에센스 마스크를 얼굴에 붙이고 맛사지를 하는 시간만큼 정도라도 마음을 돌보는 것에 시간을 쓰는 사람은 훨씬 더 풍성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돌 봐주어야 할까?  사람들은 건강하고 예쁜 피부를 위해서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을 사용해 보고, 또 피부 관리도 다양한 방법으로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과감하게 안면 거상술까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장품으로 젊었을 때부터 얼굴을 잘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우리 마음도 한 가지로만 돌 봐줄 필요는 없다. 나에게 맞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할 수 있는 것은 ‘저널쓰기’다.  저널을 쓰며 자신의 삶을 반성해 보는 것은 마음의 평안과 성장을 위해서 큰 유익이 된다. 글 쓰는 것이 어려운 사람은 꼭 글로 저널을 쓸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시로, 때로는 그림으로 저널을 채울 수도 있고, 때로는 감사 저널, 또는 감정 저널을 기간을 정해 놓고 쓸 수도 있다.  또는 일터에서 일어난 일들의 스트레스를 정리하기 위해 반성적 저널을 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널 쓰기를 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와 감정과 생각이 정리가 되고 객관화되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또 한가지 방법은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10분 정도라도 가질 수 있다.  눈을 감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도 괜찮고 잠깐 창문을 열어서 바깥의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내 마음에 지금 어떤 생각이 있는 지,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있는 지를 살펴 보고, “내 안에 이런 생각이 있었구나….내 안에는 이런 감정이 있었구나….” 라고 하면서 시냇물에 나뭇잎이 둥둥 떠내려 가는 것처럼 내 생각과 감정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오늘  그 일을 겪고 나서 자꾸만 그 일만 생각하고 있구나” 와 같은 것도 깨닫게 되고 사로잡힌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서 내가 그 생각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힘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에게 말해 줄 수 있다. “평안 ~  평안 ~ “ 필자의 경우 매일 아침 성경 구절을 보면서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고 내 삶에 적용을 하면서 짧게 기도를 할 때 마음의 평안과 힘을 얻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큰 차이를 갖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어떤 분은 자신이 마음이 정리가 안되어 힘들 때 기도를 깊이 하면 그 때 바른 생각이 떠오르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것이든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그 마음이 상처로 얼룩진 곳이 아니라 누구든 쉬어 갈수 있을 정도의 평안과 정리된 힘이 있는 곳이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건강하고 열매 맺는 삶을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게 된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사람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처럼 마음의 샘에 물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해서 마음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성실하게 함으로 마음이 주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총장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