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가면

사람들 앞에 서야하는 공인인 남편을 둔 한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불평을 한다.  불평 내용은 남편이 평소에 타인에게는 너무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며 사람들앞에서 가르치는 것을 잘 하는데 자신에게는 표현을 너무 안한다는 것이다. 아내의 불평을 들은 그 남편은 “내가 집에서라 도 편안해야지 안 그러면 어떻게…

[특별기고] 부부 갈등 해소법

얼마 전 배우 추상미씨가 부부 갈등에 대한 간증을 하면서 기독교 방송인 ‘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을 했다.  5년동안 연애를 했던 추상미 부부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24시간 함께 살면서 아주 심한 부부 갈등을 경험했다고 한다. 심한 부부 갈등에 시달린 남편은 자신이 아내를 품기에는 너무 그릇이 작다고 생각을 했고 아내는 하나님께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이혼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랬던 두 사람이 회복이 된 것은 추상미씨에게 일어난 내면에 일어난 개인적인 변화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한다.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게 돌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지 부부 갈등의 원인을 상대방 배우자에게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 부부 상담을 하게 되면 부부는 꼭 상대방이 자신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으며 상대방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일들을 시작한다. 그래서 가끔은 부부 상담을 하러 왔는데 한 시간이 지날 즈음에 평안한 상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올라와서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첫 시간에는 서로에 대한 해결해야 할 깊은 문제를 끄집어내기 보다는 결혼 전에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했고 문제로 인해 어떤 변화가 나타났고, 앞으로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지 큰 그림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첫 시간이라도 좋은 기억을 되살리게 되면 그것이 부부 상담을 지속시키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지 부부가 감정이 너무 격해지고 해결이 잘 안될 때는 두 사람을 함께 상담해서 한 치 양보가 없는 갈등을 겪게 하기 보다는 개인 상담을 할 때가 도움이 될 때가 종종 있다.  부부들이 가끔 상처를 받고 아파하다 보면 나의 상처만 보이고 상대방의 상처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부부 상담에서 싸우게 되기 때문에 개인 상담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부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추상미씨가 스스로의 문제를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이 회복된 것이 부부 관계의 회복의 시작이 된 것처럼 말이다. 부부 관계의 갈등은 쌍방간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긴 하지만 결국은 부부 각자가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며 수용하려는 태도를 갖고 자신을 바꾸기 시작할 때 회복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많은 부부 상담에서 한 쪽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상대방도 바뀌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곤했다. 그래서 감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꿀 수 없는 상대를 바꾸지 말고 자신을 바꾸는 일을 먼저 적극적으로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부부가 갈등이 심해지고 나면 생기는 오해 중에 하나가 배우자가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을 내가 잘못 만나서 나의 삶이 이렇게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사이가 너무 나빠지고 부정적인 말과 상호작용이 지속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오해는 나만 이 결혼 생활의 갈등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갈등이 깊어지고 나면 대부분의 배우자들은 자신의 고통에 집중이 되다 보니 상대방도 나처럼 큰 고통을 똑같이 겪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내가 겪는 고통을 상대방도 똑같이 경험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부부 관계는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보듯 상대방을 향해서도 불쌍한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부부 문제는 일방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상호 간의 쌍방의 문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나는 의인이고 상대방은 죄인이다. 또는 나는 노력하는데 상대는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나는 바뀌는데 상대방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라는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기가 어렵고 존중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마음을 가까이 있는 상대방은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이 결국은 관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모두가 관계에서 존중과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부는 갈등만 생기면 그것을 문제로 생각하고 어떻해서든 그것을 회피하려고 한다. 둘 다 회피를 하는 경우에는 결국 관계가 점점 소원해진다. 겉으로 보기에 별로 갈등이 없는 커플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반면 한 사람은 회피하려고 하고 한 사람은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추적자와 도망자의 관계가 생겨나면서 다른 형태의 갈등이 야기되고 갈등이 많은 커플이 된다. 제일 좋은 방식은 부부 사이에 피할 수 없는 부부 갈등을 서로를 이해하는 친밀감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갈등이 생길 때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 왜 갈등이 생겼고 두 사람은 어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갈등에 서로가 기여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오해한 부분은 인정하고 서로의 관점을 존중하다 보면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더 잘 아는 친밀한 관계가 되어간다. 필자는 자꾸 배우자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내담자들에게는 배우자의 문제를 보지 말고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있게 이끌어 주려고 많이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부부 문제가 생기면 자꾸 화살을 배우자에게만 돌리려한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배우자의 잘못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 관계의 갈등에 기여한 나의 어리석음과 불찰을 보려고 노력하자. 그것이 부부 회복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총장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특별기고] 바른 진단(앎)의 중요성

어떤 여성 분이 자신이 ‘불안 장애’라는 진단명을 받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졌는지를 표현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늘 초조하고 긴장되어 있으면서 힘들어하는 자신이 왜 그런 지를 모르다가 진단을 받고나서 ‘아! 내가 이래서 힘들었구나.’라는 자신에 대한 이해함이 생겨나면서, ‘왜?’ 라는 질문 대신에, ‘어떻게?’ 라는 방법으로 자신을 돕게 되었다고 한다. 한 남자분은 60세가 가까이 되도록 자신이 조울증인지 몰랐다고 한다. 때로 천재적인 에너지가 나와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같이 느끼며 사람들의 상태를 아주 예민하게 파악하는 일도 하고 때로는 예민하니 사람을 공격적으로 대하며 못살게 굴기도 하는 자신을 수 없이 경험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자신의 태어난 가정에서 온 상처 때문이라고 만 해석을 했고, 우울해질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며 사람들을 회피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보기보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양극성 장애 (조울증)’ 진단을 받으면서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환자임을 인정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동시에 치료를 받으면서 훨씬 더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을 잘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때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떤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큰 자원이자 재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년 전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 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개발이 되기 전의 땅을 사고 싶다 거나 당첨이 되는 복권 번호를 사고 싶다고 한다.  어느 지역이 개발이 될 지를 알고 어느 번호가 당첨될 지를 아는 것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약간은 ‘극단적인 예지만 실제로 아는 것’은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은 1960년만 해도 방글라데시보다 더 못사는 나라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한국이 발전하고 한국인의 삶이 수십년 만에 달라질 수 있었을까? 다양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필자가 보는 한국의 변화의 힘은 ‘교육’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개발 도상국의 사람들을 극심한 가난으로부터 살려내는 한 가지 방법으로 ‘교육’은 계속해서 사용된다.  교육을 통해서 극복할 수 없는 계층의 장벽을 벗어날 수 있고 교육을 통해서 사회 정의를 위해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되고 교육을 통해서 바른 가치와 도덕성을 사람들은 배우게 된다. 한국은 교육열이 어느 나라 보다 높은 나라다. 그래서 아이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부정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교육열로 인해서 한국인들은 지능이 높고 세상 어느 곳에 가서도 뒤지지 않으며 최첨단 기술들을 연구하고 세계 강국과 겨루어서도 뒤지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고 일부 정치인들은 아직도 후퇴하고 있으나 일반 시민들의 의식이나 도덕성은 상당히 높다고 자부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인들이 교육을 통해서 ‘앎’을 통한 삶의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 앎이 중요한데 무엇보다도 정신 건강과 건강 질환에 있어서 앎은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다.  정신 질환을 가지고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울 수 없다.  예를 들면, 중세 시대에 정신 질환에 대해서 전혀 알 지 못했던 사람들은 조현병 (과거의 정신 분열 병)을 귀신 들린 마녀병이라고 여겨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물에 집어넣기도 하고 화형에 처하기도 하는 극악한 처형들을 행하곤 했었다. 우리 나라도 예전에는 조현병 환자들을 거리에 방치하거나 시골의 사설 기관 같은 곳에서 사슬에 묶어 두기도 했던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질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때 환자들 뿐 아니라 환자의 가족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정신 질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게 된다.  감사하게도 호주나 한국이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함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그것을 과거보다는 덜 숨기게 되고 환자들에게 대해서 어떻게 돕고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잘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전략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을 돕는 방법 중에 다양한 것이 있지만 중요한 것이 심리 교육 (Psycho Education) 이다. 이 교육은 질환에 대한 이해함을 갖게 만들고 질환을 어떻게 잘 다루어야 하는 지에 대한 전략들을 교육함으로 환자와 가족이 질병이 있지만 회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바로 심리 교육은 앎을 통해서 사람이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전략 중 하나다. 앎이라고 하는 것은 정보적인 차원에서 지식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깊은 삶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통찰과 같은 앎이 되기도 한다.  정신 질환이 없는 사람이 불안 장애라는 연구 자료와 정보를 공부하면서 접하는 것과 가까운 친구가 불안 장애를 경험함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그 친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앎의 차원이 가슴으로 까지 또는 삶 까지 적용되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아마도 앞에 나온 두 경우의 사례는 ‘불안 장애’ 또는 ‘양극성 장애 ‘라고 하는 질환의 진단이 오랫동안 자신들이 고민하고 찾고 있던 고민의 답을 주고 그것이  삶의 산 지식이 되어서  그들의 삶이 이전과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최근 목회자부부 관계 회복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커플들이 ‘자신들이 잘 산다고 생각하고 의사소통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개선할 부분이 많았다고 부부뿐만아니라 가족 전반적인 의사소통과 관계개선에큰 도움을 받았다’ 라는 고백을 들으면서 새로운 앎이 부부들의 관계를 도전하고 성장시키는 것을 보았고, 아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앎은 사람을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삶으로 터득한 앎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알아가려고 노력하자.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 이해한다고 생각지 말고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알아가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기고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총장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특별기고] 그럴 만한 감정 VS 적절한 감정

어떤 사람이 친구와 함께 파티에 갔다. 친구는 파티 전에 말하길 오늘 자신은 운전을 할 예정이어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한 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오려는 데 친구가 술을 몇 잔 마신 것을 당신은 알게 되었다. 친구는 괜찮다고 하면서 운전을 하려고 하는데 그 차를 타려는 당신은 마음이 불안해진다. 당신은 치과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사랑니가 잘못된 모양으로 통증을 계속 주어서 치과에 가야하는 상황이다.  치과에 예약을 하고 치과 근처까지 갔는데 가슴이 너무 뛰고 식은땀이 느껴지는 것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만 도망쳐 버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위의 두 가지 예에서 어떤 것은 그럴 만한 감정 (understandable) 이고 어떤 것은 적절한 감정일까요?  당신이 예상한 것처럼 처음 예화에서의 감정이 적절한 감정입니다. 누구나 위험한 상황이 예상되면 불안감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적절한 반응입니다.  그에 비해서 두 번째 반응은 이해할 만한 감정입니다.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포의 대상이나 공포를 느끼는 장소, 물체를 접하게 되었을 때 큰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의 상태를 적절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의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합리화를 하거나 정당화하는 반응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내가 느끼고 표현하는 감정은 모두가 다 적절하다고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휴지통을 비우라고 부드러운 말로 표현하고 지나갔다고 칩시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아버지가 아이에게 휴지통이 아직도 비워 있지 않을 것을 보고 비우라고 말을 했는데 아이는 그냥 그 말을 무시했다고 할 때 아버지는 화가 나서 아이에게 소리를 치며 크게 야단을 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이에게 “너는 한 번도 내 말을 듣는 적이 없어. 그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써먹겠나!  그러려면 이집에서 나가 살아!” 라고 말을 했다면 그 화나는 감정과 표현은 그 상황에 적절한 것일까요? 아마도 그 아버지는 자신의 감정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몇 번이나 이미 부드럽게 이야기를 했고 참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아버지의 좌절된 마음과 화난 마음은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아이에게 표현하는 것은 적절한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분노를 내셔요?”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좋게 말하면 듣지 않으니까 그렇지!” 라고 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입니다. 건강하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이해되는 감정으로 표현을 하면 안 되고, 객관적인 사실 앞에서 적절한 감정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떻게 표현을 하는 것이 적절한 했을까요?  먼저는 처음 이야기를 할 때 일방적으로 흘리듯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정확히 의사가 전달되도록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아이가 들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들었는 지를 확인하고 만약 아이가 그 시간에 바쁜 다른 일이 있다면 언제 비울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아이가 할 수 있는 시간에 하도록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했는데 약속한 시간에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다가 가서 “너가 12시에 쓰레기를 버리기로 약속을 했는데 아직도 비우지 않아서 아빠는 실망스럽구나!  너가 바빠도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라고 전달하는 것이 적절한 감정 표현일 수 있습니다. 감정은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잘 조절해서 적절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관계를 파괴시키고 병들게 합니다.  상황보다 과하게 표현되면 상대방에게 위협이나 공포를 주는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상황보다 너무 부족하게 되면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한 사람속에 쌓여서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감정을 잘 조절해서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많은 부분이 기질이나 환경에 의해서 조성되기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성질이 더러운 것은 부모 때문이예요.” 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타인이나 환경을 원망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의 삶에 책임을 지고 내가 나의 감정적 표현에 책임을 지고 그 부분에서 훈련하고 노력을 하는 것이 나의 삶을 바꾸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적절한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감정을 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하면 조절도 불가능합니다.  감정을 잘 인식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있는 지를 자주 생각을 해보면 좋습니다.  마당에 꽃이 피면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처럼 한 번씩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에는 어떤 생각, 감정이 들어있는 지를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기법 중에 ‘마음 향유하기’ 기법이 있습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면서 그것에 온전히 집중을 해 보면서 그것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감정을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감정 리스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나의 현재 감정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용사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정을 확인하는 방법 중에 신체 감각을 사용하는 스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신체 감각에서 어떤 감각이 어느 부위에서 느껴지는 지를 확인해 보고 그것을 묘사해 보고 이름을 지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감정을 더 풍성하게 하려면 감정 앞에 형용사나 묘사하는 설명을 붙여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모서리가 찢겨 나간 것 같은 상한 내 마음’, ‘소라도 잡아 먹을 것 같은 배고픔’, ‘끓어 오르는 분노’, ‘콧노래 나는 기쁨’ 과 같이 감정을 표현해 보는 것이다. 그럴 때 상대방도 여러분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한 다음에 그런 감정을 일단은 누르거나 비난하기 보다 어떤 감정이든 수용을 하고 그 다음에 질문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일까? 아닐까?” 이것을 판단해 본 후에 적절한 감정이라면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 해소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상황보다 감정의 양이 너무 많다고 한다면 반대 행동(얼굴표정을 부드럽게 지어본다. 어투를 바꾸어 본다 와 같은)을 해서 감정의 힘을 좀 빼고 표현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감정의 양이 너무 적다면 조금 더 상향 조절을 해서 감정의 힘을 넣어서 표현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의 예에서 나온 아버지는 처음 이야기를 할 때는 감정의 양을 조금 더 넣어서 명확하게 표현을 하고 나중에 표현한 것은 감정의 양이 상황보다 너무 많으니 조금 줄여서 표현하는 것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 조절은 의도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이것을 노력해서 얻는 축복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임으로 적절한 감정조절을 위해서 많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라고 혼자서 어렵다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셔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 가시길 축복합니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