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치유하는 ‘희망’

긍정심리학은 인간의 행복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 가를 다양한 측면으로 연구 조사를 하여서 인간의 행복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해 왔다.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복의 부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긍정적 감정이다. 긍정적 감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사랑, 자비, 긍휼, 용서, 감사, 희망 같은 것들이 있다. 지금까지 사랑, 자비, 용서, 긍휼, 희망과 같은 긍정적 감정들은 각각 많은 연구가 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큰 용기와 힘을 더 하는 ‘희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것 또는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인데  이 의미로 보면 하나의 희망 사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학자마다 설명하는 희망은 조금 더 다른 의미들을 가지고 있는데 희망에 대해서 많이 연구한 스나이더는 희망은 성공적인 목표 지향적 결정과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에 기반한 긍정적 인지 상태라고 정의한다. 즉, 목표를 추구하는 동기와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희망의 힘’ 책의 저자 제롬 그루프먼 박사는 암 환자들이 ‘희망’을 가질 때 뇌에서 엔도르핀과 엔케팔린이라는 물질을 분비시켜서 모르핀과 같은 통증 완화 효과를 내고 그것이 질병의 치유를 돕는다는 설명을 한다.   이처럼 희망을 가진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예후가 훨씬 좋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된 바를 볼 때 희망을 가지는 것은 확실히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저자는 희망이 치유하는 힘이 있고 암까지 고친다라고 말을 한다. 필자 또한 그것을 믿기에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희망’ 이라고 말을 했는데 누군가는 ‘희망을 갖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을 줄 알았던 암이 점점 더 온 몸에 퍼져가는 순간에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어요?” 더 나아질 것이라고 최선을 다하며 암과 투병을 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곳에서 암이 발견된 사람의 낙심과 절망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희망’이라고 하는 단어가 때로는 무색해진다.  언젠가 만성적인 신체 통증으로 힘들어 하시던 분을 상담으로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만날 때 마다 조금씩 더 나빠져 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시니 그 분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실제로 쉽진 않았다. 악화되고 있는 병세와 함께 경험하는 부정적 사건들이 희망적인 결과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더 많이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오랜 질병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회복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주위에 돕는 사람들은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가지도록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고 ‘희망’을 통해서 치유로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희망을 통해 치유로 나아가는 것은 현실적인 작은 희망을 가지는 것일 수 있다. 현실가능한 부분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도록 돕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성 통증이 있을 때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기대할 수 없어도 통증이 약간 감소하기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현재의 상태를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열고 희망을 갖게 한다. 또한, 초월적 희망을 갖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신앙적, 신학적 희망이다. 크리스토프 래시라는 사회 학자는 사회가 점점 좋아지고 인본주의 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보는 낙관주의와 신학적 희망은 다르다라고 설명을 한다.  신학적 희망은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 즉 아주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에서 솟아나는 힘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에른스트블로흐는 그래서 희망은 ‘실망 가능’해야 한다고 한다. 초월적 희망은 현재가 절망적이나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희망과 미래에 대한 믿음과 도전과 절망에 대한 방어로 갖는 희망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희망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희망은 좋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니고 눈 앞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절망과 실망스러운 순간에 가능한 것임을 생각할 때 암환자에게도, 실패한 사람에게 ‘희망’은 회복으로 가는 시작의 첫 단계라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연구에 의하면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웰빙을 향상시키고 희망은 대인 관계를 향상시키고 자존감도 향상시키며 스트레스도 잘 이겨내게 한다. 또한 희망은 만성 불안의 발달에 대한 보호 요인이 되기도 하며 성공적 목표를 향해 다양한 경로를 찾도록 동기 부여를 합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갖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이 건강해지며 행복해지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갖기 위한 몇 가지 활동들을 소개한다면 그 중의 하나는 희망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희망지도는 A4 용지를 옆으로 펼친 다음  종이를 세 등분으로 접어서 제일 오른 쪽에는 희망하는 목표들을 나열하고  제일 왼쪽에는 희망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 과정을 세 가지 씩 기록을 해 보고 중간 칸에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기록해 보면서 만들어 갈 수 있다.  또한 희망 지도의 테두리에는 나에게 희망을 더 갖게 하는데 힘이 되는 사람이라던가 동기 부여를 갖게 하는 힘, 계속 용기를 갖게 하는 말, 용기를 갖게 하는 성경 구절 등을 기록해서 희망을 갖고 그것을 현실화 시키는 작업을 하게 한다. 또 한가지 도움이 되는 것은 ‘희망’ 저널을 쓰는 것이다.  형식을 갖추고 싶다면 첫번째로 나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두 번째로는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한 계획과 행동을 기록하고  세 번째로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내 안의 자원, 능력을 세 가지 씩 쓰는 것이다. 그 외에는 희망하는 것을 영화의 장면처럼 그려 보고 꿈꾸며 그것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기록해 보거나 심상화 시켜서 생각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또  ‘희망’을 가지는 것이 왜 중요한 지, 내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 지 등 희망과 관련된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면서 ‘희망’을 더 돈독히 하는 방법도 있고  청소년 아이들의 경우에는 가장 희망하는 일 5가지 가장 절망적인 것 5가지를 기록하게 해서 그것을 함께 나누어서 공감하게 하고 격려하게 함으로 희망을 갖게 하는 것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낙담을 잘하고 절망감을 많이 느끼시는 분, 노력해도 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 그리고 타인과 연결점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특히, ‘희망’ 증진 활동을 하는 것이 많은 힘이 될 것이다. 미국의 한 시인은 수수께끼라는 시에서 ‘설탕을 주면 물이 달게 되고 소금을 주면 물이 짜게 되듯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된다.‘ 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질 것인가 절망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우리는 희망으로 인한 회복을 경험할 수도 있고 희망 자체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절망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특별기고] 호주퍼스 가족여행

호주의 동부에 살고 있으면 서부에 가는 일이 쉽지가 않다. 비행기로 5시간 걸리고, 시차도 3시간이나 된다. 가까운 외국보다 더 비싼 비행기로 엄두를 낼 수 없는 여행이었다. 셋째 딸이 퍼스에 있는 이유로 비행기 값이 저렴할 때 우리 온가족 8명은 퍼스에 갈 계획을 세웠다. 한 해가…

[특별기고] 좁은 교민사회

교민 사회가 좁다 보니 한 집 건너 아는 사람을 만날 때가 많다.  행복한 가정을 위한 세미나를 위해서 호주의 가장 서쪽인 퍼스에 갔다가 방문한 교회에서 예전에 멜번에서 가정 세미나 캠프에 만난 집사님을 만났고 또 그 집사님 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사님의 친 인척이 필자와 아주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보니 넓은 사회인 호주에서 살면서도 좁은 교민 사회에서 익명성이라고는 경험하지 못해서 안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교민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철저하게 감추고 이야기를 잘 안하시는 분들도 많다.  교민들과는 아예 교제를 하지 않으면서 호주 사회에 들어가서만 사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만 나누고 자랑 거리만 나누고 힘든 것이나 어려운 것은 전혀 나누지 않는 분들도 있다.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자랑만 늘어 놓고 솔직하게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과 만나서 차를 마시고 시간을 보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공허하고 만남 자체가 의미가 없게 여겨질 때도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나눔이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고 진정한 나눔이 있어야 관계는 발전하게 된다.  진정한 나눔은 피상적인 정보 교환으로 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깊은 솔직한 감정의 교환이 있을 때 사람의 관계는 발전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모든 사람과 깊고 솔직한 감정의 교환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솔직한 것이 때로는 타인이 나를 너무나 쉽게 공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상대방을 믿고 솔직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었더니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을 때가 있다. 영화에서 보면 재산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비명사를 경험하는 일들을 종종 보게 된다.  누군가 그 집의 아이를 유괴를 한 후 재산을 빼앗아 가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뿐인가? 배우자에게 어렸을 때 또는 나의 어릴 적 가정의 모습을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가 그것이 안 좋은 상황에서 공격의 도구로 사용될 때를 경험할 때가 많이 있다. 이런 삶의 모습들로 인해서 솔직하게 나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쉽지가 않지만 삶에서 우리는 좋은 나눔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행복감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나눌 대상이 없는 사람은 삶이 허무하다고 성경의 전도서에서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므로 친구를 만들고 배우자와 화목하게 지내고 하는 것들이 때로는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서 힘든 일이지만 직업에서 성공하는 것 이상으로 삶에서 노력해야 하는 영역이다. 어제 우리집 딸이 엄청나게 일을 하고서도 아주 밝은 모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해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직장에서 오늘 수십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타인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 딸은 스트레스에서 다 해소가 된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지, 왜 상담사와 같은 타인에게 가서 내 문제를 이야기해?’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분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내 삶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감정을 나누고 어려움을 나누는 대상이 있을 때 우리는 훨씬 더 빨리 어려움을 극복하고 편협하지 않은 건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외향적 사람들이 내성적인 사람보다 강점이 있다면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외향적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혼자서 끙끙 앓기 보다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나누고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도움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얻고 더 나은 자원들을 선택하는 결정들을 내리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교민 사회가 좁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면 안 되고 감정을 나누면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평생 외롭고 갇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교민 사회에서 체면과 위신이 세우면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을 만나고 가족 안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두어서 그것을 노력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느 한 분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을 돕는 삶을 살았었는데 원치 않게 호주에 와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이 변화된 삶을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외로움과 고립감으로 죽고 싶은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일을 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생각하며 교민 사회 안에서도 타인과 소통하며 의미 있는 삶을 나누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요즘 청년들은 혼자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은 면도 있지만 삶에서 깊은 고독감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혼자 사는 사람들도 사회적 네트 워크를 통해서 좋은 친구들을 만들지 않으면 외롭고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뜻한 관계의 필요는 선택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필수인 것을 알고 좁은 교민 사회라 할 지라도 용기를 내어 내게 있는 관계들을 잘 세워 나가고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그것을 위해 나의 모습을 내려 놓고 나누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가정에서부터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총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특별기고] 가족의 항상성 (Homeostasis)

한 아빠가 가부장적이어서 집에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명령조로 이야기하고 화가 나면 함부로 아이들에게 표현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런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의 엄마는 아빠가 야단을 칠 때 아이들의 편을 들어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아이들에 대해 측은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려고 했다. 그러자 아빠는 자신보다 아이들을 더 챙기는 아내에게 섭섭함이 생겼고 아이들에게 더 무관심하며 함부로 대하게 되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더 자녀를 자신이 잘 돌보아야 하고 남편이 주는 상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이 가정의 형태는 아빠는 고립이 되어 가고 엄마와 아이들은 더 친해져서 아빠와 맞서는 모습이 되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에는 아빠는 이상하고 나쁜 사람 그리고 엄마는 헌신적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들이 쌓이게 되었다. 이 엄마는 과연 좋은 엄마일까? 어떤 한 여성은 어려운 가정의 가장이다. 엄마는 우울증으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 있고 동생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놀고 있는데 어려운 형편에서 자신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아 좋은 학위를 가지고 전문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 여성은 누릴 수 있는 환경과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여 엄마를 돌보고 가정의 모든 대소사를 다 처리한다.  감정적으로 다운되어 있는 엄마를 격려하고 직장없이 놀고 있는 동생을 이해하고 직장에서는 직장 동료들의 비위를 맞추며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책임감 있는 여성이다.  이 여성은 과연 인간 승리의 훌륭한 여성일까? 개인적으로 볼 때 위의 두 가지 사례의 여성들은 훌륭하게 자신의 삶의 무게를 잘 감당하는 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가족 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각 가족들은 일정한 가족 체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체계를 일정한 같은 상태로 지속시키려고 하는 ‘항상성’의 개념으로 지속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여성분들은 자신의 가족의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항상성의 원리에 의해서 가족의 체계를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한 반응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여성 분은 무관심한 남편에 반대의 모습을 통해 균형을 이루려고 했고 두번째 여성은 자신이라도 책임감 있게 살아야 가정이 지켜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다. 이렇게 양극화된 모습으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때 가족은 일시적으로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가족의 체계는 건강하게 유지되기가 어렵다.  첫 번째 예에서는 아이들은 아버지와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고 부부 관계는 건강하지 않아서 갈등이 생기기 쉽다.  두 번째 예에서 희생만 하고 수고하면서 살아갈 때 동생은 책임감 있는 삶을 살기가 어렵고 본인은 억압하고 참은 자신의 욕구의 불충족이 우울증이나 신체적인 질병으로 나중에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두 가정은 어떻게 해야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하고 싶을 것 같다.  가족 치료사들은 가족이 ‘항상성’의 개념으로 인해 잘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체계 자체를 재설정 (Reset) 또는 재 구조화 (Restructuring)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강하지 않은 가족의 체계의 패턴을 건강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바꾸어서 그것이 새로운 체계를 이루어 정착되어 새로운 ‘항상성’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가정의 경우에는 부모의 역할 조정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 체계 패턴을 만드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소외된 아빠에게 ‘좋은 아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빠와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는 활동을 함께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자녀들과 거리를 조금 더 두고 대신 남편과 대화의 시간을 더 가지고 남편과의 친밀감을 도모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 체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데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인내를 가지고 시도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족의 경우, 이 여성은 자신의 책임을 내려 놓는 부분이 필요하다.  싫어하는 동생에게 라도 억지로 역할을 나누어서 주는 것이 필요하고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가족들의 반발이나 저항이 보일 수 있지만 그런 변화를 시도할 때 가족은 새로운 형태의 재조정을 경험하게 된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책임감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반응으로 생겨났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악을 가지고 있지만 신의 성품을 닮은 선한 사람이며 우리 모두는 때로 어린 아이처럼 책임감 없이 뛰어 놀 수 있지만 주어진 삶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가족’ 이라고 하는 작지만 거대한 체계가 나의 삶의 역할을 규정해 버려서 줄에 발이 묶인 코끼리처럼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은 서로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성장하고 변화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총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