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가족의 항상성 (Homeostasis)

한 아빠가 가부장적이어서 집에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명령조로 이야기하고 화가 나면 함부로 아이들에게 표현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런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의 엄마는 아빠가 야단을 칠 때 아이들의 편을 들어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아이들에 대해 측은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려고 했다. 그러자 아빠는 자신보다 아이들을 더 챙기는 아내에게 섭섭함이 생겼고 아이들에게 더 무관심하며 함부로 대하게 되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더 자녀를 자신이 잘 돌보아야 하고 남편이 주는 상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이 가정의 형태는 아빠는 고립이 되어 가고 엄마와 아이들은 더 친해져서 아빠와 맞서는 모습이 되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에는 아빠는 이상하고 나쁜 사람 그리고 엄마는 헌신적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들이 쌓이게 되었다. 이 엄마는 과연 좋은 엄마일까? 어떤 한 여성은 어려운 가정의 가장이다. 엄마는 우울증으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 있고 동생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놀고 있는데 어려운 형편에서 자신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아 좋은 학위를 가지고 전문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 여성은 누릴 수 있는 환경과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여 엄마를 돌보고 가정의 모든 대소사를 다 처리한다.  감정적으로 다운되어 있는 엄마를 격려하고 직장없이 놀고 있는 동생을 이해하고 직장에서는 직장 동료들의 비위를 맞추며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책임감 있는 여성이다.  이 여성은 과연 인간 승리의 훌륭한 여성일까? 개인적으로 볼 때 위의 두 가지 사례의 여성들은 훌륭하게 자신의 삶의 무게를 잘 감당하는 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가족 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각 가족들은 일정한 가족 체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체계를 일정한 같은 상태로 지속시키려고 하는 ‘항상성’의 개념으로 지속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여성분들은 자신의 가족의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항상성의 원리에 의해서 가족의 체계를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한 반응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여성 분은 무관심한 남편에 반대의 모습을 통해 균형을 이루려고 했고 두번째 여성은 자신이라도 책임감 있게 살아야 가정이 지켜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다. 이렇게 양극화된 모습으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때 가족은 일시적으로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가족의 체계는 건강하게 유지되기가 어렵다.  첫 번째 예에서는 아이들은 아버지와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고 부부 관계는 건강하지 않아서 갈등이 생기기 쉽다.  두 번째 예에서 희생만 하고 수고하면서 살아갈 때 동생은 책임감 있는 삶을 살기가 어렵고 본인은 억압하고 참은 자신의 욕구의 불충족이 우울증이나 신체적인 질병으로 나중에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두 가정은 어떻게 해야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하고 싶을 것 같다.  가족 치료사들은 가족이 ‘항상성’의 개념으로 인해 잘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체계 자체를 재설정 (Reset) 또는 재 구조화 (Restructuring)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강하지 않은 가족의 체계의 패턴을 건강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바꾸어서 그것이 새로운 체계를 이루어 정착되어 새로운 ‘항상성’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가정의 경우에는 부모의 역할 조정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 체계 패턴을 만드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소외된 아빠에게 ‘좋은 아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빠와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는 활동을 함께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자녀들과 거리를 조금 더 두고 대신 남편과 대화의 시간을 더 가지고 남편과의 친밀감을 도모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 체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데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인내를 가지고 시도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족의 경우, 이 여성은 자신의 책임을 내려 놓는 부분이 필요하다.  싫어하는 동생에게 라도 억지로 역할을 나누어서 주는 것이 필요하고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가족들의 반발이나 저항이 보일 수 있지만 그런 변화를 시도할 때 가족은 새로운 형태의 재조정을 경험하게 된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책임감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반응으로 생겨났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악을 가지고 있지만 신의 성품을 닮은 선한 사람이며 우리 모두는 때로 어린 아이처럼 책임감 없이 뛰어 놀 수 있지만 주어진 삶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가족’ 이라고 하는 작지만 거대한 체계가 나의 삶의 역할을 규정해 버려서 줄에 발이 묶인 코끼리처럼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은 서로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성장하고 변화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총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특별기고] 세대 전수

우리나라는 요즘 남, 북이 나뉘어진 것뿐 아니라 젠더 이슈로 남, 녀가 나뉘어 있고 좌파 우파가 나누어져서 지속적인 다툼을 하고 있다. 오랜 이념의 갈등이 한국 사회에서 영향을 끼쳤던 것이 지속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가족 치료(family therapy 가족을 치료하는 이론)에서 말하는 ‘세대 전수 (generational transmission)’ 라는 개념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 지를 보게 된다.   지금의 우리 나라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최근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져 내려온 갈등의 산물임을 보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trauma외상, 상처) 와 관련된 경험이기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부분들이라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현재의 삶에서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현재에 일어나는 고통자체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고통이 현재의 고통과 맞물려 더 큰 고통과 재앙으로 경험되어지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가족치료를 하다 보면 가계도 (family genogram)를 그리게 된다. 한 가족이 현재의 어려움을 왜 경험하고 있는 지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 사람이 속해 있는 가정의 삼 세대에 걸친 또는 이 세대에 걸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이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신기하게도 많은 문제들이 세대를 타고 반복되어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가계에 내려오는 잘못된 정서적 경험이나 중독적 양상에 대하여, 건강하게 인식되지 않고 의도적으로 고치기 위한 개입 방법들이 있지 않으면 여전히 계속될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례로 어떤 사람의 가계도를 그려보니 조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도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리고 자신도 술과 담배를 하는 중독자다. 그 뿐 아니라 조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는데 부모님도 이혼을 하였고 자신은 현재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세대를 타고 반복되는 문제들이 지속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는 사회복지사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잘 생기고 전문 직업을 가지고 있고 부모님도 인격적으로 좋은 분이라고 한다. 삶에서 나무랄 부분이 없고 그렇다고 큰 상처로 보이는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안정되어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그 청년은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사회 봉사 차원으로 작은 마을에서 연극을 운영해서 하기도 하는데 죽고 싶은 생각이 끊이지 않게 자신을 괴롭힌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필자는 그 복지사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그 부모님 가족이나 조부모님 가족의 가계도를 그려본 적이 있으신 가요? 그리고 그들 중에 죽음과 관련된 이슈가 있지 않나요? 라고 물어보았더니 신기하게도 그 젊은이의 할아버지가 자살을 했고 그 젊은이의 어머니의 자매, 즉 이모 중의 한 사람도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 젊은이가 죽음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된 것이 그냥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세대를 통해서 전수된 ‘자살’ 이라고 하는 해결되지 않은 이슈가 그 가정안에 무의식적인 영향력으로 세대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분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내의 옷 값이 얼마인가? 밝혀야 하는데 재판관이 밝히라고 판결을 내렸는데 항소를 했다”고 하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필자는 “영부인이 비싼 옷을 입는 게 당연한데 왜 사람들은 그 옷 가격을 그렇게 알려고 하냐!” 그게 왜 문제가 되냐!” 고 물었다. 그 분이 하는 답변은 “그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이 비싼 옷을 입는다고 맹 공격을 이전에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문제를 삼는 것이다” 라고 답변을 했다. 이것을 보면 결국, 사람들의 심리에는 당한만큼 되갚아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건강하게 잘 다루지 못하게 되면 세대에 걸쳐서 자꾸 반복되는 악순환이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맞으면서 학대가운데 자란 자녀가 커서는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다는 것도 종종 보게 되는 같은 원리다. 상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대적인 트라우마를 반복하게 만들뿐아니라 특별히 사람들의 생각을 고정관념으로 묶어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과거에 전쟁을 경험하고 공산당에게 너무나 고통을 극심하게 당한 삶을 기억하는 60대 이상의 부모님들은 사회주의를 끔찍히 싫어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우파를 지지한다.  그에 비해 민주 운동과 수많은 민주 항쟁을 하면서 죽음을 경험한 시대를 살아왔던 40대 중반, 50대의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좌파를 지지한다. 나의 성향이 우파라 할 지라도 우파가 잘못하는 부분들이 보이면 그것에 대해서 바른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성향이 좌파라 할 지라도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 보이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고 융통성 있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 내가 지지하고 있는 파가 지향하는 바가 다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는 많다. 이런 흑백논리(Black and White logic), 파국적 사고(catastrophic thinking)와 같이 고정되고 융통성 없는 사고 때문에 분열과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이제는 그것이 젊은이들에게는 젠더 이슈 (gender issue 성별 이슈)로 이어지고 있다. 모양은 다르나 같은 맥락의 문제가 세대를 이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떻게 해야 세대전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흑백 논리와 같은 융통성 없는 사고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결국, 누군가는 반복되는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하고 의도적인 노력으로 융통성 있는 사고를 실천해야 이것들이 바꾸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 부모가 나를 돌보지 않았다고 나도 똑같이 자녀를 돌보지 않는다면 나는 세대 전수되는 문제를 가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경험되어진 사람들에게는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애플의 창시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님에게 버림을 당하고 입양아로 자랐는데 자신도 젊은 시절에 사생아를 낳고 그 아이를 버리는 반복적인 세대적인 전수의 삶을 살았던 것을 보여준다. 이런 건강하지 못한 삶을 세대를 이어 반복적으로 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부모를 탓하고 역사를 탓하고 과거를 탓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문제들을 바로 인식하고 나의 과거가 그랬기에 지금의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내려 놓고 용서와 화해로 치유와 변화로 과거의 나의 가족들이 살아온 삶을 부인하며 나는 다르게 살아가려는 피땀 어린 노력이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이런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끔 상담소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구할 때 필자는 마음이 너무 기쁘다.  이런 케이스 중 한 사람의 상담이 이번에 종결이 되었는데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많이 받으시던 분이셨는데 자신도 가족을 학대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족들이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통은 가해자인 분들이 먼저 상담소를 찾는 경우가 잘 없는데 이 분은 자신이 바뀌어지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상담소를 찾았고 자신은 상담을 엄청 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상담을 시작했는데 거의 일년 만에 회복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너무 많이 좋아져서 상담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을 해서 상담을 종결하게 되었다. 세대 전수를 끊는 과정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나 자신을 바꾸려고 하는 태도만 갖고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바라기는 좀 더 건강한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정치에도 참여하여 공격과 다툼이 아닌 화합과 성장이 세대전수 되어지기를 바라며 우리 각자가 먼저 악한 세대 전수의 영향력을 끊는데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총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특별기고] 생각의 침습

삶에서 흔히 경험하는 생각의 침습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아이 유치원에서 만난 엄마들이 자신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 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 재우 어머니는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다른 아이들 엄마가 자신을 욕하고…

[특별기고] 가정 문화의 변화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권에 사는 사람들은 부모를 존중하고 돌보는 일에 대해 가치를 두는 분들이 많다. 한 중국인 커플을 만났는데 결혼해서도 부모님을 위해 월급의 상당 부분을 보내 드리고 차도 사드리고 부모님이 요청하는 것들이 있으면 기쁨으로 해드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가난하게 살았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좋은 것이 있으면 보내 드리고 섬겨드리고 싶은 것이 자녀 마음이었다.  이렇게 비단 부모님을 공경하는 문화가 한국 문화만이 아닌 것을 보게 된다.  부모님을 잘 돌보고 잘 모시는 것은 바람직한 부분이고 좋은 문화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결혼 후에 고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내 보다 부모를 더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남편으로 인해 상처받는 아내들이 있을 수 있고 결혼을 했는데도 여전히 힘을 행사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자율권을 침해 받아서 힘든 경우들이 종종 있다.  위의 중국인 커플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관계가 좋지 않아서 갈등이 많이 있었는 데 며느리가 시어머님을 방치하거나 전혀 돌보지 않는 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가정의 경우 남편과 시어머니가 손주에 대해서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는데 그것을 아내에게 일이 다 진행되어질 때까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몇 번 진행되자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존중받는다거나 돌봄을 받는 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자신보다 어머니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남편도 또 그런 관계를 이어가는 어머니도 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존중을 받고자 하는 욕구와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채워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힘들어 하게 된다. 특별이 이런 부분의 욕구는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위의 중국인 아내는 결혼 생활 안에서 위의 두 가지 가치를 다 충족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남편 배우자는 일부러 아내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전혀 그것은 아니었다. 남편 배우자는 아내를 사랑했지만 시어머니와 생긴 삼각 관계의 틀안에서 아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가치 있는 존재구나“라고 하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지 못했을 뿐이고 아내를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은 했으나 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의 가치가 드러날 수 없었던 것이다. 결혼 생활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존중하고 돌보는 것이 귀한 일이나 그것보다 배우자를 항상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소중한 부부간의 관계를 무조건 희생시킨다 거나 부모님의 말씀을 무조건적으로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은 친밀한 부부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선 순위에 둔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들을 결정할 때 그것을 배우자와 의논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타인을 돕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열려 있는 편인 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의논을 하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할 때는 화가 난다. 그것은 돈이 어디에 소비되느냐 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위의 중국인 아내처럼 그 일로 인해서 남편은 자신 마음대로 결정들을 내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은 바로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작은 일에서 아내와 의논함으로 아내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아내가 존중을 받는 느낌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남편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배우자에게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함께 의논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좀 불편하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호주 사회 뿐 아니라 개인주의가 많이 발달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젊은 커플들은 앞의 중국인 부부와 다르게 너무 개인적인 삶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부부는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분을 개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삶을 사는데 심지어 삼시 세끼 밥도 따로 해결하는 부부도 보게 된다.  개별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면 서로 다투거나 갈등이 생기는 부분은 줄어들 수 있으나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는 단순히 일 더하기 일의 개념이 아닌 더 큰 개념의 하나됨을 배워 나가기가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커플들은 각자 알아서 자신의 부모님을 챙겨드리게 되는데 그것도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몸은 같이 살아가나 가족이 아닌 친구와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부부는 우선 순위에 있어서 자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상대방을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가게 된다.  이런 커플들은 친밀함과 상호 의존도가 적어서 함께 모든 것을 나누는 커플보다 헤어지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이런 커플들은 지나친 개별주의가 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함께하는 시간과 정기적으로 깊은 마음을 나누는 대화의 시간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통해서 서로가 불편하지만 조금씩 함께 해 나가는 활동들이 주는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나 개별적인 것도 또는 너무나 자라온 가정에 얽매이는 것도 결혼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결혼 생활의 성공을 위해서는 개별적이지도 않고 원가정에 얽매이지도 않기 위해 결혼한 나의 평생 반려자인 배우자를 우선 순위에 두고 매사에 일어나는 일들을 의논하고 자주 부부 사이의 대화들을 나누고 친밀감을 쌓아 나갈 때 부부는 더 나은 미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총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