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가족 시스템

[특별기고] 가족 시스템 엄마는 유달리 약 드시길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약을 안 먹어도 건강하다” 고 하셨습니다.  그런 믿음 때문인지 실제로 엄마는 여든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약을 먹고 있는 것이 없으시고 건강하신 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입버릇처럼 엄마가 하시던 말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필자는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약을 먹고 나면 건강해지고 회복이 될 거야 라는 믿음이 필요한데  약을 먹을 때마다 왠지 불쾌감이 있고 긍정적 기대감을 많이 갖지 않게 되면서 의무감으로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건강 식품 조차도 인상을 찌푸리며 먹게 되는 나를 보면서 부모가 준 영향이 얼마나 오래가고 또 자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는 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 후에 많은 배우자들은 상대 배우자를 바꾸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할 경우 결혼을 했으니까 이제는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경우 어떻게 든 주말이 되면 바깥에 나가기를 요청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많은 배우자들은 자신이 노력을 해서 배우자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도전을 주면 배우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변하지 않는 배우자로 인해서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내 배우자는 변하지 않을까요?’  라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 변화시키기를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배우자를 맞추어 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의 혼자의 삶에서 나의 문제를 고치려고 할 때 내가 노력하면 바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지만 결혼을 한 후 상대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 것을 단순히 내가 노력해서 바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공식처럼 되어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와 내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룰 때는 그냥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살고 있었던 다른 가정에서 형성되어온 가치, 삶의 습관, 태도, 대인관계 양상 등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경우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한 가정의 대표와 한 가정의 대표가 만난 두 가지 시스템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 치료에서는 가정은 단순한 가족 구성원의 합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그 가정 안에 형성되는 독특한 상호 작용 패턴이나 규칙이나 의사소통 방식과 같은 것들이 자리를 강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것은 건강한 것이든 건강하지 않은 것이든 그 가정이 유지되는 방식으로 작용해서 배우자의 변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의 문제는 나의 배우자야. 또는 문제를 일으키는 나의 아이야 라고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 전체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보아야 하고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 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을 때 가정의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장인 남편이 컴퓨터를 너무 좋아한다고 할 때 무조건 컴퓨터를 많이 하는 것은 나쁘니까 그것을 하지 말아라 말하고 고치려고 하기 전에 그 문제가 어디로부터 왔고 지금 현재 가정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큰 그림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린 시절에 엄마, 아빠의 갈등을 많이 경험해야 했는데 어떤 때는 부모님 사이에 오가는 폭력까지 경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이는 컴퓨터 게임에 몰입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도피 수단으로 또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컴퓨터 게임을 사용하였고 그 컴퓨터 게임이 삶의 즐거움을 주었던 위로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남편이 다시 컴퓨터에 몰입하게 된 것은 아내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였다고 합니다.  그 남편은 어린 시절 자신이 사용한 고통의 회피 방식을 그대로 현재의 결혼 관계에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남편의 컴퓨터 중독의 문제를 고치라고 말하기 전에 어쩌면 남편과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하는 법을 먼저 익히는 것이 그 가정의 문제를 고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는 많은 가정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문제아’ 라고 불리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가정 안에 있는 역 기능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그 문제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의 문제를 바라볼 때, 문제 자체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기 보다 우리 가정 안에 있는 상호 작용 간에 나타나는 역 기능적인 문제를 볼 수 있으면 문제의 답을 훨씬 더 잘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것 중에 하나가 내가 태어난 원가정에서 형성된  규칙이라던가 삶의 습관이라던가 또는 대인관계 패턴을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으면서 은근히 그것을 내 자신과 내 배우자, 또는 자녀에게 요구하면서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은가를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 전체가 명문 대학 출신이라고 할 때 나도 모르게 우리 자녀에게도 그것을 기대하면서 암묵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진 않은 지 그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지 않은 지 또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서 완벽해야 해’ 하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던 엄마의 교육으로 인해 집안일을 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잘 해야 한다고 자신을 닦달하면서 가족들까지도 완벽한 집안 생활을 요구하고 있진 않은 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적절한 규칙과 적절한 융통성을 가지고 유기체로서 성장해 가는 가정입니다. 규칙을 세우지만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고 가족이 발달하면서 바꾸어질 수 있는 규칙을 적용하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엄마로서 아빠로서 기본적인 역할들을 수행하지만 필요하다면 그 역할들을 조정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아직도 내가 태어난 가정에서 배웠던 방식대로 내 삶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배우자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내려놓고 새롭고 건강한 그리고 융통성 있는 우리 가정에 맞는 시스템을 세워 나가야 할 때입니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 총장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특별기고] 건강한 사고

[특별기고] 건강한 사고 예전에 한국에서는 과묵하고 조용한 스타일이 인기가 많았다. 모범생 스타일의 사람들이다. 왠지 그런 이들이 생각이 깊을 것 같고 실수를 잘 안 할 것 같고 공격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부장적이고 수직 구조의 삶을 살아야 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스타일이 더 많이 수용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호주에 와서 발견한 사실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게 과묵하고 조용한 스타일은 인정을 잘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며 자신의 의견을 잘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곳에서 든 인정을 받게 되고 존중을 받는 반면 조용하고 침묵하면 모른다고 생각하고 무시를 당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호주만 해도 외향적인 사람들이 내성적인 사람들보다 더 많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훨씬 더 인생의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기질은 유전적, 문화적, 시대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받으면서 격려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하는 데 아이의 경우에 부모가 어떤 기질을 잘 이해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기질을 잘 수용하느냐 에 따라서 아이들은 자신의 기질의 강점을 잘 발휘하여 성장하게도 되고 자신의 기질을 싫어하게도 된다. 부모와 환경에 의해서 자신의 기질이 어떻게 장려 되었느냐 에 따라서 아이들은 네 가지 방식으로 자신과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데 이것을 네 가지로 쉽게 설명을 하자면 ‘나는 괜찮고 타인도 괜찮다 ‘, ‘나는 괜찮지 않으나 타인은 괜찮다’, ‘ 나는 괜찮은 데 타인이 괜찮지 않아 ‘ ‘ 나는 괜찮지 않고 타인도 괜찮지 않아 ‘ 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괜찮고 타인은 괜찮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보다는 타인과 환경으로 종종 원인을 돌린다. 그래서 매사에 세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잘못했다고 말을 잘 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기 보다  합리화 하기를 잘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이러 이러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합리화시키며 자신의 잘못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괜찮지 않으나 타인은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고 나면 그것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에게 의존을 하거나 타인에게 삶의 결정권을 맡기는 경우가 많고 학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쉽게 죄책감을 느끼고 책임감을 느끼고 우울해하고 무기력해지는 경험들을 종종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피해의식을 경험하면서 깊은 자기 연민 가운데 빠지게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이렇게 되기가 쉽다. 똑 같이 상처를 받았는 데 외향적인 사람들은 상처에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들은 ‘분노’의 문제를 가지고 타인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내성적 사람들은 ‘우울’의 문제를 가지고 자신을 탓하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고, 너도 괜찮다 “라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지나치게 남 탓을 하거나 지나치게 내 탓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기질이 존중 받지 못하고 건강하게 자신을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될 때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하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을 굴복시켜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되기가 쉽다. 이런 사람들이 갖게 되는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있는 왜곡된 생각들이다.  그 중에 하나가 ‘흑백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계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100% 한 쪽의 잘못만 있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오류에 빠져서 상대방 때문에 관계가 이렇게 나빠졌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여성 분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해서 자기 확신이 별로 없었고 자존감이 낮았다.  그에 비해서 이 여성 분의 남편은 너무나도 자신감이 있고 밝은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없는 자신감이 가득한 그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결혼을 했는 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의 잘못은 보지 않고 축소시키면서 상대방의 잘못은 지적하고 탓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여성은 모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잘못으로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평소에 자기 확신이 없었던 터라 점점 더 소심해지고 자기연민 가운데 빠지게 되고 나중에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 사례의 주인공과 남편은 흑백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의 원인이 타인 아니면 나에게 100%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학대하는 사람이 되고 아내는 책임감과 죄책감의 무게에 살 맛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담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 외로 이런 흑백 논리의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로 남편은 잘못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모든 것의 잘못은 아내에게 있을까? 라고 질문을 해본다면 위의 사례의 남편과 아내는 큰 오류에 빠져 있음을 금방 보게 될 것이다. 건강하게 사고하고 건강하게 관계하기 위해서는 ‘나도 괜찮고 타인도 괜찮다’라는 태도를 가지고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은 타인에게 또는 내 자신에게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부족해도 조금 완벽하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100% 괜찮아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흑과 백이 아닌 회색 지대 안에서 장, 단점을 가지고 살아가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남편이 건강 해지려면 아내도 나 만큼이나 괜찮은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만큼 나도 괜찮은 사람인 것을 찾아내고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다.  그것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수용하고 누구나 강점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흑백 논리가 아닌 융통성 있는 사고를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점점 공동체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타인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너 때문이야, 또는 나 때문이야” 라는 비난을 버리고 “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지 “ 라고 하는  열린 태도로 서로의 연약함을 수용하는 일들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총장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특별기고] 마음의 동기 파악하기

[특별기고] 마음의 동기 파악하기 학교를 가야하고 유치원을 가야 하는데 가지 않으려고 하고 부모님께 무지하게 매달리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가 떠나면 몇 시간씩 울면서 힘들어 하는 아이들 그리고는 유치원에서 한 선생님에게만 집착하는 아이 또는 교문 앞에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이다. 돌아보면   필자로 어린 시절에 엄마의 치마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였다.  살기에 버거워 아이들의 정서에 관심이 많이 없었던 부모님들은 필자가 울면 그냥 떼를 쓴다고 여기면서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때로는 매를 들어서 학교를 가게 하거나 어떤 때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서 학교에 가곤 했었다.  그런데 한 번도 부모님은 왜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어떤 두려움이나 염려가 있는 지를 물어보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당시 필자의 경우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선생님의 체벌이었다.  조금만이라도 지각을 해서 학교에 가면 무서운 선생님이 교문 앞에 서서 야단을 칠 것이 두려워 등교 시간이 조금 늦어질 것 같으면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부모님을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 때는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예기 불안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입학식 때부터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불안해하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소위 지금은 이런 양상을 ‘분리 불안 장애’라고 이야기하며 이 부분을 심도 있고 세심하게 다루고 있지만 70년도 후반,80년도를 살아온 초등학생들은 그런 것에 대한 존중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어제는 7학년이 막된 우리집 막내가 갑자기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절대로 빠지면 안 된다고 하는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고 살았던 필자는 옛날 부모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교회를 안가는 것은 절대 안되지, 꼭 가야 해! 이 아이가 믿음이 없네!”라고 판단을 하면서 부정적 반응을 할 수 있었지만 다르게 “00야, 뭔가 힘든 일이 있나 보네, 무엇 때문에 안 가고 싶어?”라고 물어주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교회를 가지 않겠다는 이유가 약간은 엉뚱하고 단순한 것이었다.  교회에서 제비 뽑기를 해서 성경의 한 부분을 발표하라고 하는데 자신이 당첨이 되고 그것이 너무나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평소 남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는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 보다는 부담스러운 발표를 하지 못하겠다고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막상  아이는 그리고 나서 마음이 가라앉았고 발표를 하는 날짜가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고 일단은 선생님께 연락도 드리지 않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도, 교회를 가지 않겠다는 아이도 나름대로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어른들이 보기에 그 이유가 너무나 단순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실질적인 어려움이고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수 있기에 그 이유를 잘 파악하고 세심하게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평소에 부모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한 아이는 그런 자신의 어려움을 편하게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또 때로는 다른 이유를 들어서 부모님에게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에게 요청했을 때 들어줄 만한 이유를 만들어서 요청하는 것이다.  한 아이는 부모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악기 배우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 것을 보고 홧김에 학교를 다니기 싫다고 말하며 그만두고 싶다고 표현을 했는데 평소에 학교 교육에 회의를 가지고 있던 부모님은 너무나 쿨 하게 학교를 그만 두게 해서 아이는 당황을 했는데  말을 못하고 그만 학교를 그만 두게 된  사례가  있다. 최근, 우리 집에 재미난 일이 하나 있었다.  주말 아침에 부엌에 들어갔더니 남편이 화가 나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하루 전에 아들이 온 가족을 위한 저녁을 만들었는데 남은 음식을 가족들에게 주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 놓고 그릇 뚜껑위에 “00 것.  손대지 마시오” 라고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남은 음식이 없어서 늦게 온 막내와 막내의 친구들은 라면을 먹었는데 아침에 보니 냉장고에 아들이 만든 파스타가 많이 있는데 손을 못 데게 한 것이다. 남편에게는 아들의 행동이 이기적으로 보였고 자신만 생각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도 솔직히 이해가 안 되지만 화를 내기 전에 상황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 지나가는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알게 된 사실은 어제 만든 파스타는 인기가 좋아 다 먹었고 아침에 남편이 발견한 파스터는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것이고 그릇에 쓴 글씨는 어제 쓴 것이 아니고 오래 전에 기록해 남아 있던 글자였는데 하필 글자가 쓰여진 그릇에 파스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를 키울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아이들의 동기에 대해서 부모의 입장에서 쉽게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모든 관계에도 해당되는 부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의 동기가 어떠한 지, 어떤 이유로 인해서 아이는 그런 선택을 하기 원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지를 파악하기 전에 아이들의 동기를 판단해 버리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한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고 아이의 동기와 이유를 들어보려는 열린 태도가 아이의 불안을 다룰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한다. 특히, 분리 불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마음이 약하고 부모님 과의 감정적 분화가 되지 않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잘 배우지 못한 아이일 가능성이 많음으로 작은 일에 아이가 독립적인 행동과 결정을 내릴 때 칭찬을 해주고 의존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는 무시하고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조금씩 사다리를 올라가듯 불안한 상황에 부딪힐 수 있는 단계별 적용과 건강한 자아감을 갖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완벽한 부모가 불안하지 않은 자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는 부모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 아이가 불안한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정된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함부로 자녀를 판단하지 않고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들어보자“라는 태도로 아이들을 대한다면 그 안에서 참 좋은 부모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특별 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총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특별기고] 우리에게 ‘희망’이 필요한 이유

[특별기고] 우리에게 ‘희망’이 필요한 이유   요즘 들어 뉴스에서 물가는 더 상승하고 그에 따라 이자율은 오른다는 소식과 더불어 큰 회사들이 경영난을 못이기고 파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런 이야기 속에 몇 천년 만에 유럽에는 온 기후의 온난화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폭설로 인해서 집 안에서 얼어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걱정, 불안, 염려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 뿐이 아니다. 필자는 여름 휴가 기간동안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 봉사를 도 맡아서 하게 되었는데 글쎄, 어찌나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든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함께 왠지 우울해지는 것만 같다.  암투병을 하는 사람도 많고 그 중에는 가족이 없으신 분도 계시고 또 가족이 있지만 가족으로부터 지원을 잘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 뿐인가 병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으로 인한 사별의 아픔으로 몹시도 힘들어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은  병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조현병 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까지 너무나 많은 사연들과 아픔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들 중에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심한 절망감 가운데 있는데 소망할 것이 많지 않은 경우다. 상담자로서 도 많은 도움을 주기가 어렵고 해줄 수 있는 것이라 고는 위로밖에 없을 때 마음이 착찹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은 작은 소망이라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꿈을 꿀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왜냐면,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더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꿈과 희망이 있을 때 살아갈 수 있다. 배우자를 잃고 빨리 세상을 함께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기 때문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어떻게 든 힘을 낼 수 있게 희망을 갖게 하려한다.  물론, 어떤 분에게는 이 세상의 소망이 아니라 죽은 이후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가지도록 도와야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소망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된다. 가끔 상담을 하다가 현재의 너무나 큰 어려움 때문에 심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변화에 대한 희망과 꿈을 전해주고나서 그 사람의 눈빛이 변하고 감정과 태도가 변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 힘이 되는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가끔 만나는 무기력한 사람들 중에 자신은 너무나도 무기력함을 느끼지만 실제 그 사람의 조건이나 환경을 보면 무기력하지 않으며 무한한 가능성과 선택의 자유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과 특별히 않은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쇠창살 속에 마치 자신이 갇혀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이상의 변화에 대한 시도를 하지 않게 되고 피해자로 때로는 무능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타인과 세상을 탓할 뿐 아니라 자신도 끊임없이 원망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잃어버린 자신의 내면의 힘을 되찾으라고 격려하며 그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자원이 있으며 시도하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음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작업이다.  조금씩 자신의 내면의 손상된 자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자아가 타인에게만 원망을 돌리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스스로의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힘을 내어 자신을 성장하도록 존중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  마치 물을 먹지 못한 화분의 한 없이 쳐진 나뭇잎이 물을 먹고 되살아나듯이 무기력함에서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물론, 우리가 꿈을 꾸고 희망을 갖는다고 해서 갑자기 상황이 바뀌고 갑자기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꿈을 꾸고 희망을 갖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삶을 바꾸는 시작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갖기 때문에 오늘의 나를 변화시킬 수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할 수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는 경험할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므로 희망을 붙잡아야 한다. 언젠가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를 정서적으로 도와주었는데 그 분을 도와주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환자는 완치를 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완치는커녕, 없던 증상들이 하나씩 오히려 더 생기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기만 했기 때문이다. 증상의 악화와 더불어 환자의 희망은 더 사하지고 절망은 점점 더 깊어 졌기 때문에 그 분에게 회복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고 환자의 고충을 들으면서 그의 어려움을 도와줄 수 없는 내 자신도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 그 환자가 변하게 되었다. 나의 훌륭한 상담 솜씨로 환자가 개선이 되었다면 좋았겠지 만 그것이 아니었다. 환자는 나아지지 않는 병의 증상에 더 이상 연연해 하지 않고  아프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적인 삶에 의미를 두고 그 안에서 소망을 가지게 되면서 회복이 될 수 있었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환자는 분명 기뻐하고 있었고 삶의 충만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으며 이전의 절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긍정 심리학에서는 ‘희망’ 이라고 하는 것이 한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 그것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절망하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의 어려움과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딛고 더 성숙하게 되는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고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도 또 지나갈 것이라고 믿으며   환자들은 회복의 삶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특히,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 어떨 때는 더 신이 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여행 직전이 가장 여행에 대한 기대와 꿈을 많이 느끼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한 번의 긴 휴가 보다 작은 휴가들이 더 행복을 많이 느끼게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사람처럼 작은 휴가를 앞두고 그 휴가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우리는 또 행복해질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는 교회에서 강조를 하는 편이나 소망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오늘날에 많은 강조가 있진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그 무엇보다 소망을 붙잡는 시간들이 될 때 지금에 닥친 삶의 위기와 어려움들을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소망의 끈을 붙잡자. 현재만 바라보지 말고 미래를 꿈꾸자.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생각하자.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학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특별기고] 나는 신이다

[특별기고] 나는 신이다 최근 ‘나는 신이다’ 라고 하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가 시청률 1위에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경각심을 갖게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 자칭 신이라고 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착취를 당하며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지금도 잘못된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가족 모두가 고통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필자는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사이비종파를 살펴보면서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발견이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제목이 ‘나는 신이다’라고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신격화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도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자신을 신 격화하는 것을 본다면 즉시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모든 거짓 인간신들은 거짓말을 잘하고 힘과 권력을 사용하여서 사람을 학대하는 점이다.  얼핏 보면 그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일부 모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완전히 반대다.  성경에 보면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 말하는데 하나같이 사이비 교주들은 거짓말을 하여서 재산과 개인의 삶을 모두 착취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짓의 사람들이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 문란한 모습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만큼 타락했는지를 볼 수 있다. 또한, 그것에 더하여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도 쉽게 저지르는 것도 볼 수 있다. 더불어 사이비 종교들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를 악하게 사용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잘 활용해서 겉으로 보기에 아주 화려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게 하고 신에게 가까이할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너에게 준다는 것과 같은 달콤한 메시지들을 선물한다. 또는 몇 명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의 심리를 조정하여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결국, 교주의 힘에 의해서 조종된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자유를 박탈한 삶을 살게 된다. 조직에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고, 일하지 않고 싶어도 해야 하고, 늘 감시의 눈이 따라다니며 자신도 누군가를 감시하면서 주위의 사람들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정명석의 경우에는 탈퇴한 신자를 다시 납치를 해서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었고 ‘신나라’ 라는 레코드 사를 운영했던 아가 동산의 교주는 자녀나 부모까지 학대하게 하고 심지어 죽이게까지 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일들을 하게 된다. 그 안에서 종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사람의 인권은 더 이상 존재하기 않는다는 것을 쉽게 보게 되는데 그들이 추구한 낙원과 영생과 사랑과는 대조적이다. 막상 그들이 들어간 현실의 삶은 꼭두각시 또는 종의 삶이며 황폐하고 피폐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삶이 되었다. 비단, 이런 모습은 사이비 종교에서만 볼 수 있지 않다. 때로는 가정에서 때로는 커플 사이에서도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힘과 거짓말을 통해서 상대방을 통제하고 자유를 빼앗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두려움 때문에 관계에 복종해야 한다던 가 오래 동안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서 자신의 존재감이 없어지고 자신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지만 침묵하며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존자들은 현실에 많이 존재한다. 어떤 관계에서 든 힘을 통한 통제가 일어나거나 거짓말로 세뇌하는 ‘가스라이팅’이 있거나 자유를 잃어버리게 한다면 그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이다.  그리고 사람은 학벌의 차이나 외모의 차이와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조건으로 인해서 차별대우를 받는다든가 커플 관계에서 상하의 주종관계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경고 신호’로 여겨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신은 아주 신처럼 완벽하고 월등하나 너는 그렇지 않다 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조정과 학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사이비 종파나 잘못된 관계 가운데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마음에 ‘힘’이 있어야 한다. 마음의 힘이 강한 사람은 타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분별하여서 받아들이고 원치 않을 때 ‘아니요’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타인이 함부로 내 삶을 통제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마음이 착하고 여리고 거절을 못하고 자기 주장을 못하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의 통제를 만날 때 자칫 잘못하면 확 끌려가게 된다. 그런데, 한 번 어떤 체계 안에 들어가면 모든 체계는 하나의 유기체의 역할을 함으로 때로는 건강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쉽게 금방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을 키울 때 무조건 권위에 복종하는 자녀를 키우기 보다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하고 소신 있게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하며 자신의 경계선이 침범될 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네트 워크를 평소에 잘 개발함으로 삶에서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생길 때 그것들을 잘 의논한다면 훨씬 더 잘못된 길로 빠져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에 부모님과 소통을 잘 하는 아이는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부모님과 소통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한 가지의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됨으로 잘못된 결정의 비율을 줄여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라기는 좀 더 건강한 공동체와 건강한 관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아져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동시에 마음의 건강한 힘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 많아 지길 소망한다. 특별기고자 :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학장/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